굿바이

2011/04/04 01:32
동현님이 신청한 글감이 아닌 다른 글을 쓰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내가 1학년 때, '신입생 세미나' 라는 것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당시 총장이었던 정운찬선생님이 15명을 메일인터뷰를 통해 선발하는 이른바 '총장 세미나'가 있었다.

총장세미나는 3학기 째에 진행되오고 있던 것이었다. 이른바 '1기','2기' 선배들과 인사하고, 마치 '총장의 아이들'처럼 대접을 받으면서  '3기'인 우리들도 '아, 이것이야말로 엘리트집단이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나와 몇을 제외한 대부분은 고등학교 때부터 수재로 인근지역에 유명했던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그 인근지역은 '대치동' 이었다) 억울하게도 이 친구들은 성격까지 착했다. 세상의 평지풍파는 모두 그들을 비껴간 것 같았고, 생채기 한 번 나본 적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2년의 대학생활을 총장세미나 친구들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그 친구들과 나는 가고자하는 방향이 전혀 달라서(다들 고시와 유학이라는 두 가지 목표중 하나를 가지고 있었고, 그 때까지만해도 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했다 허허^^;;) 가벼운 수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사실 동일한 목표들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친밀했고 그만큼 서로가 주는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다.  

소윤이도 그 중 하나였다. 내가 재수를 했기에 나이는 나와 같았고, 여리고 착한 친구였다. 나와 그리 친하지는 않았지만 재수하게 된 자신의 여동생을 만나봐달라고 부탁을 해왔고, 나는 그래서 소윤이 만큼이나 착한 지연이를 만나서 되도않는 조언들을 해주었다. 그 뒤로 소윤이는 나에게 더 많은 이야기들을 털어놓았고, 아마 소윤이는 나를 꽤 친한 친구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3학년이 되고, 정보문화학이라는 나에게 딱 맞는 곳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총장세미나 멤버들과 멀어졌지만 소윤이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과는 꽤 여러 번 만나 술도 마시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년 후, 나는 오랜만에 소윤이와 또 한 명의 친구를 만나 와인을 마시면서 회사를 나와서 벤처를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두 친구는 정말로 기쁘게 응원해주었다. 그리고 몇 번의 만남 후, 소윤이는 미국 로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그로부터 6개월이 채 안되는 작년 겨울, 소윤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학교생활이 너무 맞지 않고 외로워서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 총장세미나 친구들에게는 말하기 민망해 아직 말하지 않았고, 지금 심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이니 조금 안정을 찾은 뒤에 만나자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한 달 즈음 지나 소윤이를 만났다. 소윤이는 지친 상태였고, PR관련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한다고 했다. 소윤이가 이음에 호감을 가지고 이것저것 묻기에, 나는 이음에서 일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소윤이는 매우 설레여했고, 사무실에 방문해 윤진님(마케팅 팀장님)과 마프(김도연이사님)와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더 함께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나서 소윤이는 부모님꼐서 탐탁치않아 하셔서 함께하기 힘들게 되었다, 미안하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러려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소윤이는 계속 이음에 함께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며 연락을 해왔고,  나는 소윤이를 다시 만났다. 마지막 제안이니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러나 소윤이는 며칠 뒤 또 다시 나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이 즈음 되니 나도 좀 짜증이 났다. 너무 우유부단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소윤이가 갈팡질팡한 때문에 PR 담당자를 적기에 뽑지 못했다는 생각에 화도 났다.  그래서 당분간은 신경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가 올해 1월의 이야기이다.

그러다 지난 3월 소윤이의 전화를 받았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한 끝에 다음 학기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그래, 결국 그럴거면서..' 라고 빈정대면서 겉으로는 잘 결정했다고, 가기 전까지 푹 쉬라고 말했다. 소윤이는 "지연이(소윤이 동생)가 너를 롤모델이라고 이야기하며, 부모님도 너를 보고싶어 하신다. 지금은 네가 바쁘니 한가해지면 한 번 보자" 고 했고, 나는 또 건성으로 알겠다고 대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어제 소윤이가 자살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슬프다기보다는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그 문자를 받고도 나는 여느 때와 똑같이 머리를 말렸고 옷을 골랐고 밖에 나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웃었다. 저녁 때 즈음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그러다 오후에 지연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자신을 기억하는지, 그리고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기에, 나도 그저 '응^^ 당연히 기억하지!' 라고만 답을 했다. 한참 뒤, '그냥 언니 잘 지내시나 궁금해서 연락드렸어요!' 라고 답장이 왔다. 나는 이 어린게 뭐라 이야기를 해야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렇게 보냈구나...하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그제서야 소윤이가 죽었다는 사실이 조금 실감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소윤이가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지연이가 혼자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장례식장 근처에 도착했는데, 날이 아직 많이 밝았다. 왜인지 이렇게 밝을 때에 식장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서 혼자서 식당에 들어가 밥을 꾸역꾸역 밀어넣고, 날이 어둑해진 후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소윤이가 모니터화면 속에서 환하게 웃고있는 사진이 보였다. 절을 한 후 부모님께 내 소개를 드리자, 두 분은 소윤이가 정말 고민 많이 했었다며 내 손을 부여잡고 한참을 우셨다. 조문객에게 인사를 하고 있던 지연이도 나를 보자마자 서럽게 울었다.
 
어떻게든 지연이가 이겨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고, 건방진 생각일지 모르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십만원을 쥐어주면서 '네가 망설이다 연락 안할 것 같아 주는 거니 꼭 연락해서 이 돈으로 나 맛있는 것 사달라'고 했다. 지연이는 또 울었다.

...내가 소윤이 부모님을 열심히 설득하고, 그래서 소윤이가 우리 회사에서 함꼐 일했으면 결과는 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분명 그랬으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아니었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루가 지난 지금, 나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잘 살고 있다. 문득문득 소윤이 생각이 나고 눈물이 나지만 그것도 그 때 뿐이다.

지연이에겐 앞으로가 정말로 힘든 날들 일거다. 정말로.

소윤이를 추억하고 감상에 젖는 것보다는 지연이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함께해 주는 것이 내가 해야하는 일인 것 같다

내가 앞으로 나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지연이에게 소원해질 떄 마다 이 글을 보면서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11/04/04 01:32 2011/04/04 01:32
유망주가 갑자기 급 떙겨서 블로그 글 하나 써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질 수 없어서 하나 쓰기로 했다.그런데 뭘 쓸지 생각해보다가, 하나 쓰려다 보니 또 하나가 생각나고.. 결국 하나도 못쓰고 이러고 있다.

그래서 일단 쓰고싶은 글감들 다 적어놓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누군가가 이걸 써라 하고 댓글로 달아주면 그걸 먼저 써야지

글감A. 1번이 CS,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 있는 2번 위기관리.
 :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 그러나 자주 간과하게 되는 이 놈들에 대하여

글감B. 이음신족들(이음팀원들) 이야기
 : 왜 그들은 마포구 합정동 웰빙센터에 있게 되었는가 (이건 좀 여러번에 걸쳐서 써야 하겠다)

글감C. 이음신국 사무실 문화
: 이음신족들을 모실 때 중요하게 고려한 것들을 모아보면.. 회사문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무실문화정도는 말할 수 있을지도..

글감D. PR의 부대효과, 더 나아가 내부인의 착각들
: 거창하게 말하자면 아이덴티티 같은 것.

쓰고보니 다 이음과 관련된 이야기들 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내가 얼마 전에 엄청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회사 신용등급이 곧 내 신용등급이고, 회사가 신뢰도를 확보해야 내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그런 상황이라는 사실을 무식하게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악착같이 이음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해서 어떻게든 내 이자율이 낮아지는데 기여해야한다..  고로 당분간은 계속 '긍정적인' 이음 이야기만 할거다 키키 ..

아무튼 저의 시큰둥블로그에 방문해주신 분들 감사해요.
그나마 읽어줄만한 글감을 댓글로 달아주시면 초스피드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ㅋㅋ
참고로 위에서 계속 이야기한 이음은 온라인데이팅서비스 회사랍니다 :)
2011/03/27 23:22 2011/03/27 23:22
생각해보니 2개월 뒤면 이음을 시작한 지 1년 째 되는 날이다.
고속터미널 유웨이중앙교육에 더부살이 하던게 작년 5월. 그리고 8월에 홍대 사무실로 이사를 왔고, 2010년 마지막 날에는 지금의 사무실로 이사를 했다. 유웨이사람들로 가득한 사무실에서 책상 두개 빌려다가 마프랑 눈치보면서 일 했었고 남녀 쇼핑몰 100개 순위 뽑아서 전화하고 메일보내고 직접 찾아갔지만, 전부 거절당했었다. 망할 내 친한 친구들은 '마담뚜서비스' 하지 말라고 했고, 우리 엄마는 내가 회사 때려치고 소개팅서비스 한다는 말을 차마 주변에 할 수가 없으니 그냥 회사다니는 척 하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아빠에게 정말 감사해야 한다. 아빠는 언제나 그냥 무조건 믿어줬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흔히 말하는 '시련'은 없었던 것 같다. 서비스를 닫자.. 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운이 참 좋은 것 같다. 누군가 '요즘 잘 되고 있죠?' '별 문제 없죠?' 라고 말하면 '아직까지는' 그렇다고 말한다. 언제 '아직까지는'이 '드디어'로 바뀔지 모르니, 긴장하고 잘 준비해야겠지만.

말하고자 하는 본론은 이게 아니었다.
오늘의 블로깅은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도록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OK아웃도어닷컴에 나온 문장임)

 초창기에는 흔히 말하는 탐날만한 인재들이 이음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지금도 초창기이지만.. 아무튼..) 뭣도 없는 벤처라는 점 이외에도 '온라인에서 남녀를 소개시켜주는 서비스' 가 가지는 편견도 작용했을 것이고, 피플투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좋지 못한 인식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언젠가 이음이 유명해지면 마프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져서 탐내던 친구들이 이음에 관심을 가지고 '한 번 함께해볼까?' 하고 생각해주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매력적인 친구들이 이음과 함께하는 '황홀한 순간'들이 지속되다보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음의 히스토리를 함께한 기존의 친구들이 새로 들어온 친구들에게 밀려 도태될 수도 있다는 생각.

사람들이 회사를 다닐 때에 가장 동기부여를 받는 것은 복지도, 높은 연봉도 아닌 '끝내주는 동료와 일하고 있다는 사실' 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초기부터 함께했다'는 점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는 동료를 어쩌지 못하고 인정상 내버려두는 것은 절대로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하는 것 또한 내 탓인거다

'끝내주는 동료'들이 올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듯이 기존의 친구들이 지속적으로 '끝내주는 동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벤처가 좋은 것은, 대기업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큰 책임감을 가지고 해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이 성장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벤처의 장점이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인 것은 아니고, 사고가 유연하고, 욕심이 있으며, 커뮤니케이션능력이 좋은 사람에게는 최고의 효력을 발휘하는 듯 하다.

앞으로도 사고가 유연하고, 욕심이 있으며, 커뮤니케이션능력이 좋은 친구들에게 달려들어야지ㅎㅎ
끝내주는 동료들이 또 다른 끝내주는 동료들을 탄생시키는, 나도 쫌 끝내주는 동료로 만들어 주는!! 그런 우리회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음에서 일한다는 것이 자랑이 되고, 더 나아가서 이음에서 개발을 한다는 것이, 이음에서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 이음에서 운영을 한다는 것이, 이음에서 마케팅을 한다는 것이, 이음에서 IPS(이음피플만족)를 한다는 것이, 이음에서 기획을 한다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대박!'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하하하
2011/03/13 14:42 2011/03/13 14:42
#1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나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학교 경영대와 법대는 서로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반면 사회대와 인문대는 그렇지 않았다.(이건 내가 여러 학과의 친구들에게 물어본 결과, 다들 수긍했던 부분이다) 인문대와 사회대는 세부적인 학과들이 많기에 학생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할 기회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경영대/법대와 인문대/사회대의 건물구조 또한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경영대와 법대는 건물이 중앙집중형구조를 띄고 있다. '로비'라고 불리는 곳을 통과해야만 건물 내의 다른 곳들로 갈 수 있고, 로비에는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어 학생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에 비해 사회대와 인문대는 로비라고 할 만한 공간이 없다.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로비에 앉아서 학생들은 출입문을 통과해서 로비를 스쳐가는 다른 학생들을 쳐다보고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많은 소문들이 떠도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건물의 구조적인 특징보다는 각 학과의 특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특정 건물이 사용자들의 커뮤니케이션(여기서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언어comm 이상이다)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인 듯 하다
특히 신기한 건물이 많은 홍대에서 몇 달을 지내다보니 잠시 사그라들었던 건물에 대한 관심, 더 나아가서는 Space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내가 건축가가 될 수는 없을 지라도, 꼭 나중에 제대로 건축에 대해 배워보고 싶다
그럼 세상을 조금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 3

연장선상에서, 건축가와 영화감독은 여러모로 닮았다
건축물이 완성되는 과정과 영화가 완성되는 과정의 세세한 내역들을 하나씩 비교해보면 더욱 그들의 공통점을 알 수 있게 된다. 나는 건축과 영화가, 더 나아가서는 건축가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탄생시키는 세계는 온전히 그들의 것일 수 없기에 매력적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녹여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커뮤니케이션과 조율이 필요하기에, 그리고 가끔은 그들이 의도치 않았던 작용들로 인해 더욱 놀라운 결과들이 탄생하니까.

내가 지금,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하고 싶은 것 또한 이런 것이다

# 4

채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채널이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양상을 매우 많이 바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채널을 만들고 싶고, 기존의 채널을 연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언론정보학과에 왔고,
내가 원하던 커뮤니케이션학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 나는 행복하다! 야호 !
2011/03/01 23:16 2011/03/01 23:16
와, 나는 정말 행복하다!
(사진은 내가 존경하는 파인만아저씨)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라고 매일매일 생각한다
나는 거의 대부분 전혀 힘들지 않고 아주 가끔 약간 힘들다

앞으로도 아주 가끔씩만 약간 힘들고 싶다.
가능할거다 한 가지만 잘 한다면.  

어느 순간에 어떤 일이 찾아와도
준비가 되어 있으면 약간만 힘들
수 있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것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제일 중요한 것은,
예측가능한 수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 들을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거기에 대해 대비하는 것

그래서 주말이 필요하다
주말에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다
정말 중요하다,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은.

하나 빠졌다. 예측하고 (핵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대비하는 것

코 앞의 일에만 급급한 사람을 누가 믿고 같이 걸어가려고 할까

바키 그러니까 잘하렴


그런데,

연애할 때에는 예측한다거나 대비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연애할 때 '있을 수 있는 일' 에는 항상 그것이 들어가 있으니까.

 
 
2011/02/19 20:03 2011/02/19 20:03
# 1

그야말로 오랜만에 글을 써보자
마우스드라이버크로니클을 어쩌다가 구해서 쪼꼼 봤는데,
재미있었다
그러나 다 읽지는 못했다
아무튼 재미있는 책이었다

# 2

시간은 참 빨라서 벌써 9개월 째이다
그래도
나는 생각보다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는데,
단 하나는 꽤 많이 바뀌었다.

짜투리시간까지 쥐어짜게 된다는 것이 바뀌었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계속 그런다
한 시도 가만있지를 못한다

아무튼
모든 것에 감사하고 절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아직까지는.

# 3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언제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기에
나는 절대 친구들이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상황은 없게하려하고

(내가 아는 한은) 내부에서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없다..
없는 것 같다... 없겠지......

결국 내가 잘하면 된다 ㅎㅎ

# 4

민주가 옆에서 계속 글글글 책책책 해서
"얘가 왜 이러지, 원래 안 이랬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갑자기 '흠.. 그럼 나도 한 번...' 하고 생각하게 된다

히히
2011/02/17 17:34 2011/02/17 17:3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즈로꼬를 시작할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즈로꼬를 열심히 한다면, 어떻게 쓰는 게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했고
두번째는 트위터를 했습니다.
아니다, 했던게 아니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는 애들입니다

미니홈피에는 솔직한 일기와 책메모 하며 잘 쓰고 있고
트위터에는 덜 솔직한 잡담들을 적고 있어요

그래서 뭘 더 할 말이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이번 기회에 요즘 멀어졌던 세 가지를 다시 가까이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 세 가지는 그림이고 영화고, 그리고 내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입니다
나는 커피랑 빵이랑 책 다음으로 이 세 가지가 좋습니다

하다가 스을스을 책메모도 이리로 옮겨와야겠습니다

그래서
2010년 환절기에, 이렇게 이즈로꼬를 시작합니다 :)

저는 박희은이고, 이 글을 읽어주어서 고오맙습니다
그리고 이즈로꼬를 어떻게 쓰면 더 재미있는지 알려주시면 더욱 고오맙겠습니다
2010.09.19
2010/09/19 22:11 2010/09/19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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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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